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6.25 전쟁/전쟁의 전개 (문단 편집) ==== 포병 ==== 포병의 경우는 더욱 열악했다. 국군의 대표적인 포병 화력은 [[M3 105mm 경곡사포]]였는데 북한군의 최대 화력인 122mm 평사포와 견인곡사포에 비해 화력도 약하고 사정거리도 절반 정도였다. 122mm 포들은 10km이상의 사정거리를 지녔지만 M3 105mm 곡사포는 6.5km 정도다. 덤으로 수량도 91문밖에 없어서 6개 포병대대를 만든 후 가장 중요한 곳에다가 1개 포병대대를 잠깐 파견하는 식으로 운영하여 포병지원을 받기도 힘들었다. 대전차무기로 57mm [[M18 무반동포|M18 무반동총]]과 [[6파운더|57mm 대전차포]]가 있었지만 대전차포의 경우 북한군의 T-34/85에게는 전면 경사장갑을 상대로 이론상 '''320m''' 이하의 거리에서만 효과가 있었고 철갑탄도 크게 부족했다. 덤으로 미국이 6파운더를 M1 57mm 대전차포로 라이센스 생산할 때 관통력 높은 [[분리철갑탄]]은 명중률이 좋지 않다고 생산하지 않았고 기존 철갑탄은 탄착각도가 30도만 넘어가도 '''탄자붕괴'''현상이 일어나서 경사장갑 상대로는 답이 없었다. M18 무반동총과 2.36인치 바주카도 구경이 작고 탄두 형상도 경사장갑 명중시 도탄현상이 발생하기 쉽기 때문에 메탈제트가 허공으로 분산되므로 T-34/85 상대로는 위력이 부족했다. 더군다나 대전차무기 운용 인원이 전차나 장갑차같은 기갑으로 보호받는게 아니라서 매우 위험했고 성과를 거두기 위해 근접할 경우에는 말 그대로 자기 목숨을 걸어야만 했다. 물론 미군측 집계에 따르면 한국전에서 전차간 평균 교전거리는 400야드 수준으로 그렇게 길지 않았다.[* [[https://1boon.daum.net/bemil/5b31ff616a8e510001fb081d|한국 전쟁의 전차전(上) : 소대장들의 전투]]] 따라서 매복후 기습하는 방식으로 대전차포를 운영하면 성과를 거둘 가능성이 있긴 했으나 이렇게 하려면 숙련된 인원이 쓸만한 지형지물을 만나서 미리 시간을 가지고 제대로 매복진지를 건설한 후 부대를 제대로 배치해야 가능한 일이었으며 위에 언급했듯이 한국군이 보유한 대전차무기의 저열한 관통력, 도탄현상, 탄자붕괴, 철갑탄 부족등의 각종 현상은 매복공격의 성공률까지 크게 떨어뜨렸다. 여기에 더해서 대전차무기들이 포병전력의 부족 탓에 보병지원에 투입되는 터라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기도 나빴다. 결국 전쟁이 터지자 포병과 대전차무기는 빠른 속도로 손망실이 발생하였고 대전차무기는 제대로 된 활약을 거의 하지 못했다. 이후 미국으로부터 각종 대포와 슈퍼 바주카를 입수하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서서히 해결되기 시작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